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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마게네 왕국의 역사 2 - 미트리다테스 1세

지평선의순례자 2010. 6. 16. 21:55

미트리다테스 1세 (King Mithridates I Kallinikos)

소아시아의 수많은 다른 소왕국들과 마찬가지로 콤마게네 왕국도 동과 서의 접합점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와 다양한 관습과 다양한 언어를 갖고 있었다. 콤마게네 백성들은 틀림없이 하나의 민족으로 통합되어 있음을 느낄 수 없었다. 가족이나 혈연관계가 콤마게네 국민으로서의 국가관보다 더 중요했다. 미트리다테스 왕은 이러한 상황을 바꾸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예를 들면, 그는 매년 조상들의 명예를 걸고 올림픽 대회를 개최했다. 이 올림픽 게임은 당연히 그리스인들의 올림픽 대회와 비교될 수 있었다. 미트리다테스 자신은 젊은 시절 대회에 참석해 콤마게네 국민들 사이에 대단한 인기를 얻었으며 여러 차례 우승을 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의 칭호도 ‘아름다운 승자’라는 의미의 ‘칼리니코스(Kallinikos)’가 되었다.

미트리다테스는 라오디케(Laodike)라는 이름의 셀레우코스 왕조의 공주와 결혼해 세 딸을 두었다. 네 번째도 딸을 낳자 낙심하기 시작했다. 뒤를 이을 아들을 낳는 것이 몹시도 시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얻은 마지막 아들은 그들에게 더욱 큰 기쁨이었다. 아들의 이름은 라오디케의 아버지 이름을 따서 안티오쿠스가 되었다.

콤마게네 왕국은 여러 차례 침략을 넘보는 주변의 열강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했다. 따라서 미트리다테스는 신들과 조약을 체결했다. 이 신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상상속의 존재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조약이 그의 작은 왕국을 보호해 주고 독립을 유지시키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로 이 조약은 백성들 간의 불화를 막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콤마게네 국민들은 다양한 지역 출신의 민족들이 섞여있었다. 그들은 서로 연관된 민족이라고 거의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신들과의 조약으로 인해 그들 모두가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국민이며 신들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동질감을 키워 나갔다.

그 결과 미트리다테스는 자신의 국가 내에 다양한 민족들을 하나의 용광로 속에 융합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조약을 존중하기 위해 미트리다테스는 국가 전역에 테메노스(temenos)라고 불리는 작은 성소들을 많이 설치했다. 각각의 성소에는 미트리다테스가 각각의 신과 악수하는 모습을 그린 부조를 만들어 놓았다. 이 성소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넴루트 산 정상에 있는 성소였다.

미트리다테스는 5명의 신에게 다음과 같이 그리스어와 페르시아어 이름을 동시에 부여했다.

  1. 아폴로(Apollo) - 미트라스(Mithras)

  2. 헤라클레스(Herakles) - 아르타그네스(Artagnes)

  3. 제우스(Zeus) - 오로마스데스(Oromasdes)

  4. 헤라(Hera) - 텔레이아(Teleia)

  5. 헤르메스(Hermes) - 헬리오스(Helios)

 

 

 

 

 

 

 

 

 

신들의 이름을 두 언어로 동시에 사용한 것은 콤마게네 왕조가 그리스 계와 페르시아 계 조상을 동시에 갖고 있어서 두 문화에 동시에 가깝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트리다테스는 성소에 새겨놓은 비문에서 오직 자신만을 통해 자신에게 굴복하는 모든 백성들은 신의 가호를 받는다고 알려주려고 했다. 즉, 성소들은 신과의 조약을 증명하는 어떤 계명을 갖고 있어야 했다.

매년 루스(Loos) 달의 10일 - 서력 7월14일 - 은 “위대한 신들의 현시”가 있는 날이다. 그 날은 또한 미트리다테스 자신이 즉위한 날이기도 하다. 매년 이 특별한 날에 모든 콤마게네 백성들은 자신들의 마을에 설치된 조그만 성소에 모여 신들이 현시하는 의식을 개최했다.

미트리다테스 왕도 왕국의 귀족과 요직의 인물들을 넴무루트 산으로 불러 모아 수백명의 백성이 운집한 가운데 위대한 신들을 영접했다. 콤마게네 백성들에게 이것은 신들과의 조약을 재확인 하는 연례행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