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터무니 없는 소문에 애가 탔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제대로 숨을 쉴 수 없고 당장 소문을 낸 당사자를 찾아가
헛소문을 퍼뜨린 이유를 따지고 개인적인 사과는 물론 공개적인 사과까지 받아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괴로운 순간 든 생각이 있었습니다.
"바로 지금이 내가 죽어야 하는때다'
그렇지만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도리질을 치며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데
내 안에서 이런 고백이 터져 나왔습니다.
"하나님! 나는 죽었습니다."
"하나님! 나는 죽었습니다."
두 번, 세 번, 네 번......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계속 이 고백을 했습니다.
열 번째 이 고백을 반복하는 순간 죽음이 임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은 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죽음은 참으로 고요하고 평안했습니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습니다
죽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일때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것이 내게 실재가 되었습니다.
더이상 내 안에 미움도 섭섭함도 억울함도 분노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내게 아무 의미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안에서 죽음이 임하여 정말 죽은 자로서 문제를 보게 된 것입니다.
나는 비로서 "주님! 이제 저에게 주님의 마음을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통곡이 터져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슬피 울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말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팠습니다.
울다가 지쳐서 탈진 상태에 이르렀을 때 '내가 지금 왜 이렇게 울고 있지?'하는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나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느냐?"
나는 그제야 주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헛소문을 퍼뜨려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교인을 바라보시고 통곡하시고
그 교인을 향해 분노하시는 목사를 바라보시며 통곡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말입니
다.하나님앞에서 끊임없이 죄를 짓는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마음은 '분노'가 아닌 '슬
픔'입니다.
교회안에서조차도 서로 헐뜯고 상처주고 거짓말하고 자기를 주장하며 살아가는 우
리를 보시는 주님의 마음은 깊은 슬픔과 안타까움입니다.
자아가 죽고 나서야 비로서 주님의 그런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죽지 않았다면 죽어도 몰랐을 주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유기성목사의 '나는 죽고 예수는 살고'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