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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마게네 왕국의 역사 6 - 콤마게네의 최후

지평선의순례자 2010. 6. 16. 22:00

콤마게네의 최후

이러한 사건이 있은 후 얼마 되지 않아 안티오쿠스는 사망했다. 그의 시신은 넴루트 성소로 옮겨져 그의 아버지 미트리다테스 1세의 곁에 함께 매장되었다. 안티오쿠스의 아들 미트리다테스 2세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미트리다테스 2세 시대에 콤마게네는 더 이상 로마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결국 로마 제국의 속국이 되어 시리아 주에 편입되었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로마와의 전쟁에서 황태자 파로코스를 잃은 파르티아 왕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왕위에서 물러났다. 파르티아의 패잔병을 보호함으로써 자신의 왕국을 위험에 빠뜨렸던 콤마게네의 왕이자 파로코스의 할아버지인 안티오쿠스 왕에게도 볼 낯이 없었던 것이다. 그의 또 다른 아들이 왕위를 물려받았다. 이 새로운 왕은 무자비했다. 자신의 왕위를 위협할만한 인물들은 모두 살해했다. 안티오쿠스의 딸 라오디케와 그녀의 다른 아들들도 모두 살해되었다.

미트리다테스 2세는 자신의 누이인 라오디케의 시신을 콤마게네로 운반해 카라쿠쉬(Karakush)에 능을 만들고 매장했다. 능 앞에는 그녀를 추모하는 비석을 세웠다. 비문에 따르면 미트리다테스 2세가 라오디케를 무척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미트리다테스 2세는 님파이오스(Nymphaios) 강둑 위에 카라쿠쉬 능을 만들었다. 그의 어머니 이시아스(Isias)와 그의 또 다른 누이 안티오키스(Antiochis), 그리고 안티오키스의 딸 아카(Aka)도 이 능에 매장되었다. 그의 여름 궁전 테라스에서는 님파이오스 강 계곡에 위치한 카라쿠쉬 능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이처럼 미트리다테스 2세는 자신의 사랑하는 여인들을 죽은 후에도 가까이 둘 수 있었다.

그의 욕심 많은 동생 안티오쿠스 2세는 미트리다테스 2세를 왕위에서 끌어내리려고 획책했다. 이 때문에 로마가 그를 체포했다. 로마의 원롷원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으며 기원전 29년 로마에서 처형되었다.

콤마게네는 안티오쿠스 4세 시대에 마지막으로 독립을 맞이했지만 짧은 기간에 불과했다. 안티오쿠스 4세는 71년에 로마 군단에 패하고 소규모의 콤마게네 군대는 뿔뿔이 흩어졌다. 콤마게네의 무서운 궁병들과 중무장한 기병들은 ‘콤마게네 여단’이라는 이름으로 로마 군단에 흡수되었다.

앞으로 발생할 모든 반란을 예방하기 위해 로마 병사들은 콤마게네의 영광을 회상시키는 모든 석상과 건물들을 파괴했다. 그들은 넴루트 산 정상에 있는 성소도 부수었다. 콤마게네는 멸망했으며 넴루트는 이제 긴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단지 산 밑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과 길 잃은 목동들의 발자욱 소리만이 잠을 방해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