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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드족의 기원과 역사적, 문화적 배경

지평선의순례자 2008. 7. 22. 16:21

쿠르드족의 기원과 역사적, 문화적 배경1)

 

 

출처 : http://cafe.naver.com/areastudy/147


 

쿠르드인의 민족적 기원


BC 3,000년 경,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탄생하기 약 7천 년 전부터 쿠르드인들은 지금의 쿠르디스탄2) 지역에서 농경문화를 형성하며 살았다. 신석기 시대에 쿠르디스탄은 농업 기술의 발생지로 사냥, 채집 경제에서 식량 생산 경제로 전환하여, 인근 메소포타미아, 아나톨리아 동부, 이란 고원을 비롯하여, 북아프리카, 유럽, 인도에까지 농업 기술을 전했다. 본래 쿠르디스탄의 원주민들은 지금의 그루지아 사람들과 같은 코카서스 계통의 사람들이었고 개별 부족 중심의 독립적인 사회체계를 이루어 살고 있었다. BC 1,200년에서 900년 사이에 아리안족이 이곳으로 이주하여 원주민들과 동화되어 인도 유럽어족에 속하는 쿠르드인의 아이덴티티가 형성되었다. 이 때 쿠르드족을 지칭하는 쿠틸(Qutil)이라는 이름이 최초로 등장했다.


쿠르드족의 인종


백인계 아리안족으로 BC 7세기경 칼데아인(Caldeam)과 동맹을 맺어 아시리아인을 멸망시킨 메디아(Media) 왕국의 건설자인 메데스(Medes)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 사학자들인 헤로도투스(Herodotus), 크세로폰(Xenophon), 호라스(Horace), 타키투스(Tacitus)부터 소련의 역사학자 미노스키(V. Minosky)에 이르는 여러 학자들이 쿠르드족이 메데스족의 후손이라고 주장했으며 이 의견은 현재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쿠르드족은 스스로를 메데스족의 후손이라 믿고 있으며 실제로 쿠르드 투사들을 부르는 진군가에 이 내용이 언급되고 있다(Pelletiere, 20). BC 653년경 바빌로니아인들은 모든 쿠르디스탄 산악지대와 메데스를 포함한 쿠르디스탄 거주민들을 쿠틸이라고 명명했다. 메데스족은 쿠틸에서 발전된 카르두(Qardu) 혹은 카르두크(Qarduk) 라는 용어로 세분되어 쓰이기도 했다.


서기 7세기 이후 쿠르드족의 상황을 언급한 사료가 전해지고 있는데 이 기록에 따르면 쿠르드족은 아랍계, 페르시아계 왕조 휘하의 부족군이었으나 10세기에는 디야르바크르 지역을 중심으로 마르완 왕조(983~1085년)와 아제르바이잔을 중심으로 리와드 왕조(10세기 초~1071년)를 각각 창립했다. 1370~1500년 티무르 왕조 시대에 쿠르디스탄은 현재 이란의 우르미아로부터 터키의 말라티아, 상(上) 메소포타미아 지역에까지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16세기 찰라딘 전투 결과에 따라 터키 오스만 왕조와 페르시아 사파비 왕조간의 국경이 정해지면서 그 사이에 위치한 쿠르드 지역이 분단되었고, 부족장 형태의 봉건영주의 지배 아래 소국이 난립하여 19세기까지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쿠르드 근대사


초기(1494~1918년)에서 쿠르드족은 쇠퇴기를 맞이하는데 주요 원인으로는 중동 지역이 페르시아와 오스만 두 제국으로 나뉘어 경쟁을 하면서 쿠르디스탄이 두 제국의 충돌지가 되었고, 1497년 바스코다가마(Vasco da Gama)가 희망봉을 횡단함으로써 국제 무역로가 변경되어 쿠르디스탄 경제가 철저히 고립되었기 때문이다. 16세기부터 해로를 이용하는 국제 무역이 급격히 늘었으며, 반면 동서를 잇는 실크로드 등의 육로 이용이 줄었다. 따라서 중동 지역을 가운데 두고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던 기술과 상품이 줄었고, 쿠르디스탄을 비롯한 고대 육로에 위치한 국가들은 경제적 힘을 상실했다.


“쿠르드족의 땅”이라는 의미를 갖는 쿠르디스탄은 셀주크 왕조 시대에 아제르바이잔과 루리스탄 사이의 하마단과 케르만샤를 중심으로 한 지방을 지칭해 온 지리적 용어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쿠르디스탄은 5개국으로 나뉘었는데, 쿠르드 전체 영토의 43%는 터키, 31%는 이란, 18%는 이라크, 6%는 시리아, 2%는 구소련으로 분활되어 있다. 터키 영토에서 쿠르디스탄에 해당하는 지역은 마드린(Madrin), 시르트(siirt), 학카리(Hakkari), 디야르바크르(Diyarbakır), 비트리스(Bitlis), 무스(Mus), 반(Van), 아으르(A?rı) 등이며, 우르파(Urfa), 아드야만(Adıyaman), 말라티야(Malatya), 엘라즈(Ela?ı), 툰젤리(Tunceli), 에르진잔(Erzincan), 빈?(Bing?l), 카르스(Kars)에도 상당수의 쿠르드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라크 영토에서 쿠르디스탄은 다후크(Dahuk), 모술(Mosul), 아르빌(Arbil), 슐라이마니아(Sulaimania), 키르?(Kirkuk), 타밈(Taamim), 디얄라(Diyala), 카나킨(Khanaqin), 셰이칸(Sheikan) 등이며, 이란 영통에서 쿠르디스탄은 코르데스탄(Kordestan), 사난다즈(Sanandaj), 키르만샤흐(Kirmanshah), 일람(Ilam), 말라이르(Malayir), 본지르드(Bornjird), 마하바드(Mahabad), 비자르(Bijar), 등이며, 시리아 영토에서 쿠르디스탄은 자지라(Jazira), 카미슈리(Qamishli), 피나르(Pinar), 아프린(Afrin) 등의 지역에 해당한다.


쿠르드족의 인구수


측정하는 주체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쿠르드족은 인구수를 다소 과장하는 경향이 있고, 터키나 이란과 같이 쿠르드족을 소수 민족으로 지배하는 국가들은 낮게 보고하기 때문이다. 쿠르드 민족주의자들의 계산에 따르면 쿠르드 인구수는 대략 2천 5백만 명에서 3천만 명에 달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약 2천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100만 명 정도의 인구를 가진 쿠르드 도시는 디야르바크르와 키르만샤흐이고, 인구 50만 이상의 도시는 안텝(Antep)과 키르쿠크이다. 인구 25만~5만의 도시는 아르빌, 다?, 하마단, 말라티야, 슐라이마니아, 우르파(Urfa) 등이다. 인구 1만~25만의 도시는 아드야만(Adiyaman), 아르다한(Ardahan), 아그리(Agri), 바트만(Batman), 툰젤리(Tunceli), 엘라즈(Elazig), 에르진잔(Erzincan), 하이마나(Haymana), 이슬라히예(Islahiye), 칸가와르(Kangawar), 카나킨(Khanaqin), 마르딘(Mardin), 카미슐리(Qamishli), 카샨(Qachan), 산안다즈(Sanandaj), 샤하바드(Shahabad), 시르트(Siirt), 반(Van), 유나크(Yunak) 등이다.


국가명

전체

쿠르드족

분포비율

터키

67,000,000

14,000,000

20.9%

이란

50,700,000

6,000,000

14%

이라크

17,300,000

4,100,000

30%

시리아

12,500,000

1,000,000

8%

구소련 지역

-

1,000,000

 

기타

-

2,500,000

 

 

 

28,600,000

 


쿠르드어


이란, 아프가니스탄, 타지키스탄에서 사용되는 인도 유럽어족의 페르시아어와 가강 가까운 언어이다. 쿠르드어는 크게 쿠르만지어에 속하는 북부 쿠르만지어(바흐디나니어)와 남부 쿠르만지어(소라니어)와 파흘라와니어에 속하는 디밀리어(자자어)와 구라니어, 4개의 방언군으로 나뉜다. 쿠르만지어 사용자와 파흘라와니어 사용자간의 의사소통이 어려울 정도로 각 방언간의 차이가 크다. 어떤 학자들은 파흘라와니어를 쿠르드어에 포함시키지 않을 것을 제안했으나 쿠르드족의 문화와 역사적 사건을 함께 겪어왔으며, 언어적으로도 다른 쿠르드어 방언에 많은 영향을 주고받은 것으로 보인다.


쿠르드어가 여러 방언으로 나뉘게 된 직접적 원인은 BC 1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쿠르디스탄의 민족이동과 언어를 비롯한 문화와 경제의 변화를 가져온 종교의 도입 때문이었다. 또한 쿠르드어 방언의 분류에 대한 기준 학명이 없었던 것도 중요한 이유이다. 현대에는 표준 쿠르드어를 정비할만한 국가 기구가 없어 쿠르드족은 제각기 방언을 사용하고 있다.


북부 쿠르만지어(바흐디나니어)는 터키, 시리아, 구소련, 이란의 후라산 지역에서 1,500만 명의 쿠르드인들이 사용하며, 남부 쿠르드어(소라니어)는 이라크와 이란에 속한 쿠르디스탄에서 6백만 쿠르드인들이 사용한다. 쿠르만지어는 우르미아 호수 서쪽에 위치한 학카리 산악지대의 쿠르드 유목민들이 사용했던 언어이다. 쿠르만지어는 14세기 초 이후 쿠르드족의 유목민화가 이루어진 시기부터 확산되기 시작하여 농업 경제 파괴와 무역로 변경에 따라 16세기 중반부터 확산 속도가 가속화되었다. 16세기부터 동서무역이 해로를 통해 이루어지자, 쿠르디스탄 경제는 위축되었고 도시 성격의 문화와 사회에 바탕을 둔 쿠르디스탄 농업 경제는 유목 경제로 전환되었다. 유목화된 쿠르드족 농업자들은 샤피이 학파의 순니 이슬람을 쿠르만지 유목민으로부터 받아들여 구 파흘라와니의 친족인 쿠르만지어의 방언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현재 쿠르드족의 75% 정도가 쿠르만지어를 사용하며 15%는 파흘라와니어를 사용하고 있다.


유프라테스 상부 지역을 따라 쿠르디스탄 북방, 키질리르마크(Kizilirmaq), 터키 무라트(Murat) 강에 이르기까지 파흘라와니어의 디밀리 방언은 약 4백5십만 디밀라 쿠르드족이 사용하고 있다. 다르심(Darsim), 카파크츄크(Chapakhchur), 시버레크(Siver다), 비틀리스(Bitlis)에서도 디밀리 쿠르드 방언을 사용한다.


구라니 방언은 이란, 이라크 영토의 쿠르디스탄 남단, 할라브자(Halabja), 마리반(Marivan)부터 디나와르(Dinawar)까지 하마단(Hamadan), 키르만샤흐(Kirmanshah), 카나킨(Khanaqin) 등에서 사용된다. 구라니 방언은 17, 18세기에 영향력이 줄어들기 시작하여 남부 쿠르만지어권의 세력에 눌리고 있으며, 구라니어 사용자는 약 150만 명 정도에 달한다.


표준 쿠르드어의 부재에 따라 쿠르디스탄이 여러 언어권으로 나뉘어 통합 교육에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라크에 병합된 쿠르드족은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아랍어 뿐만 아니라 쿠르드어 교육을 받았다. 이라크 쿠르드족에게 대학 수준의 쿠르드어 교육이 실시되자 이라크 쿠르드족의 문맹률이 가장 낮아졌다. 터키 쿠르드족의 문맹률은 6세 이상 인구를 기준으로 72% 이상이며, 이라크에 거주하는 쿠르드족의 문맹률은 주변의 아랍국가 보다 높은 73% 이상이다. 1925년 이후 교육 기관에서 쿠르드어 사용과 교습이 금지된 상태에서 쿠르드인을 위한 교육은 극도로 제한되고 있다. 또한 쿠르디스탄에 교육기관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아 산악지대에 거주하는 쿠르드인의 문맹률은 매우 높지만, 도시에 거주하는 쿠르드인은 교육시설의 보급과 경제적 모티브로 인해 문맹률이 상대적으로 낮다.


쿠르드 종파


쿠르드인의 97% 이상의 수니 이슬람 샤피이 학파에 속한다. 이란 영토내의 키르만샤흐, 칸가와르(Kangawar), 하나단, 쿠르바(Qurva), 비자르(Bijar) 등 쿠르디스탄 남부와 동부 지역의 쿠르드인들은 쉬아 이슬람을 따른다. 데르, 엘라즈, 마라스 등지에 소수의 시아파 쿠르드 족이 거주한다. 시아파 쿠르드족 인구는 1백~1백 5십만 정도이며, 전체 쿠르드족의 5~7%에 달한다. 그 밖에 극단적 시아파 (굴라트:Ghulat), 터키 디림라 지역에서 믿는 수피즘, 조로아스터교와 이슬람교가 혼합된 알레비파, 키르만샤흐의 동부, 사흐네(Sahne)와 서부 케렌트(Kerend), 키르쿠크(Kirkuk) 남부의 야르사니파, 사탄 숭배자로 알려지고 극단적 시아의 특성을 가진 예지드파가 있다. 샤피이학파의 쿠르드족 수니 무슬림들은 동쪽으로 이란의 시아파, 서쪽과 북쪽으로 터키의 하나피파, 남쪽으로 시리아와 이라크 북부의 하나피파 사이에 위치해 있다. 언어와 종교 면에서 쿠르드족의 아이덴티티는 쿠르만지어를 사용하고 샤피이학파의 무슬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쿠르드 사회는 부족과 몇 개의 부족들이 합해진 부족연합을 생활 공동체로 삼고 있다. 공동의 목초지를 가지고 있는 부족은 외부세계와 구분되는 하나의 정치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즉, 각 부족은 혈연관계를 바탕으로 역사적, 경제적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다. 쿠르드 전통에서 지역의 토호인 아가(Agha)는 한 지역의 경제적, 정치적 실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지역의 촌락민들은 아가에게 충성을 다짐했다. 그러나 촌락을 중심으로 형성된 쿠르드 사회 체제는 점차 변화하여 도시 중심 생활로 바뀌고 있으며, 이러한 도시화 현상에 따라 아가를 중심으로 한 사회질서도 새롭게 재편되고 있다.

 


1) 공지현, 「쿠르드족 민족주의 운동」, (1999, 중동연구), pp.156-161


2) 터키 남동부, 시리아의 북동부, 이라크의 북부, 이란의 서북부 지역에 걸쳐 있는 산악 지역을 지칭하는 곳으로 현재 어느 나라나 세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지명은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