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시리아 분쟁
▲ 개요
시리아는 다른 아랍국가들과 마찬가지로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 이후 줄곧 그 나라와 첨예한 적대관계를 유지해 왔다. 네 차례에 걸친 중동전쟁 때마다 시리아는 이집트와 함께 최전선에서 대이스라엘 전투를 전개했다. 시리아는 1967년 6월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에 의해 골란고원을 강점당하면서부터 대이스라엘 공세를 강화했다. 1981년 12월에는 이스라엘이 골란고원을 자국 영토로 합병하고 유태인 정착촌을 건설하기 시작했으며, 1992년 말 33개소에 유태인 정착촌을 건설해 놓았다. 이로써 시리아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둘러싼 분쟁을 넘어 자신의 영토 문제가 직접적으로 걸린 무력분쟁을 전개하게 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접어들어 탈냉전 국제질서가 형성되고 중동지역에서도 화해와 협력의 필요성이 증대됨에 따라 시리아와 이스라엘간에도 평화협상의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1992년 7월 이스라엘의 라빈 정권 출범과 더불어 평화협상의 계기가 마련되기 시작했다. 라빈 정권은 종전의 페레스 정권이 대아랍 강경 노선을 견지하여 왔음에 비해 다소 유연한 자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랍측과의 대화 가능성이 커졌다. 시리아로서도 잃어버린 골란고원을 찾을 수 있다면 평화협상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미국과 이집트가 양국간 평화협상을 성사시키기 위한 외교 노력을 다각적으로 전개했다. 마침내 1994년 8월 6일 크리스토퍼 미국 국무장관이 이집트에서 무바라크 대통령 및 아라파트 PLO 의장과 회동하여 시리아와의 평화협상 방안을 논의하였다. 이에 양측은 1994년 6월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않게 되었다. 그러나 양측간의 협상은 골란고원의 반환을 둘러싼 입장에 차이가 컸기 때문에 결렬될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과 시리아는 1995년 12월 27일 미국에서 그 동안 중단된 평화회담을 재개했다. 양측의 대표단은 워싱턴 교외의 한 농원에서 3일간 일정의 자유토론식 회담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회담에 앞서 데니스 로스 미국 중동특사가 먼저 이스라엘 대표단과 만나 회담 내용을 협의했고, 시리아 대표단과도 사전 조율 작업을 가졌다. 양국 대표단은 12월 29일 1차 회담을 마치는 대로 귀국하여 본국 정부와 협의를 가진 후 다시 워싱턴으로 돌아와 1996년 1월 3일부터 6일까지 2차 협상을 갖기로 했다. 그러나 양측간의 협상은 성사되지 못했다.
난항을 겪던 이스라엘과 시리아간의 평화회담은 미국의 적극적인 중재로 1999년 말, 4년만에 다시 재개되었다. 막대한 군사비 지출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시리아와 군사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는 이스라엘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협상이 성사되었다. 협상에서 이스라엘은 시리아에게 레바논과 시리아에 있는 반 이스라엘 단체에 의한 공격을 중지시키는 데 협조하는 내용을 포함한 안보 보장을 요구한 반면 시리아는 골란 고원의 반환을 선결 조건으로 제시했다. 동 협상을 주선한 클린턴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골란 고원에서 철수할 경우 새로이 발생하는 안보관련 비용에 대한 보상을 약속했다.
그러나, 동 협상은 2000년 2월, 이스라엘이 레바논의 헤즈볼라 거점 지역에 대규모 폭격을 가하고 시리아가 이를 "중동평화를 뿌리 채 흔드는 일"로 비난하면서 중단되었다. 레바논에 자국군을 파견하고 헤즈볼라를 지원하는 시리아는 이스라엘의 폭격을 자국을 겨냥한 것으로 인식했다.
2000년 5월, 이스라엘과 시리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레바논에서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철군함으로 양국관계의 새로운 계기가 마련되는 듯 싶었으나 평화협상은 재게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11월 이스라엘은 골란 고원내 유태인 정착민촌의 확대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스라엘은 오슬로 협정에서 약속한 골란고원의 반환을 기피하고 있다. 골란고원은 이스라엘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일 뿐 아니라 수자원의 주요 공급처이기도 하다. 골란고원으로부터 전체 식수의 삼분의 일을 공급받고 있는 이스라엘은 반환될 경우 식수원의 안정적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골란고원에서 철수할 경우 남하한 헤즈볼라 게릴라의 공격에 대비한 방어체제 구축을 위한 비용도 이스라엘이 골란고원 반환을 꺼리는 이유이다. 2000년 1월 협상에서 이스라엘은 175억 달러 정도의 추가 비용을 예상하고 미국에게 보상을 요구했으나 미의회의 반대에 직면한 적이 있다. 또한, 이스라엘 인구의 절반 이상이 반환을 반대하고 있어 이스라엘 정부가 골란고원의 반환을 결정하더라도 대국민 설득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2001년, 이스라엘과 시리아간의 평화협상이 재개되지 못하고 있다. 2000년 9월부터 시작된 팔레스타인의 인티파다가 2001년 지속되면서 이스라엘은 시리아와의 관계 개선을 모색할 여력이 없었다. 또한, 강성인 샤론 총리는 골란고원 반환에 부정적이기 때문에 이를 전제로 한 시리아와의 평화협상에 소극적이다.
한편, 레바논의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을 지속적으로 공격하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은 레바논에 주둔하는 시리아군의 레이다 기지를 폭격한 바 있다. 이스라엘은 시리아가 헤즈볼라를 사주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있다고 인식하면서 헤즈볼라의 공격이 지속될 경우 시리아를 공격하겠다고 선포한 바 있다. 그러나, 시리아의 헤즈볼라 영향력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레바논과 이스라엘 국경 부근의 영향력 행사를 둘러싸고 시리아와 헤즈볼라가 갈등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즉, 이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가 국경지역을 통제한다면 이는 시리아의 영향력의 상대적 감축을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다.
2002년, 이스라엘과 시리아간의 특이한 사항이 감지되지 않고 있다. 양측간의 충돌도 평화협상도 없는 상황이다. 2001년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의 지속적인 충돌로 인해 시리아와 평화협상을 재개할 여력이 없어 보인다. 다만, 이스라엘은 레바논 남부를 거점으로 하는 헤즈볼라 세력의 이스라엘 공격에 시리아가 깊숙이 연계된 것으로 판단하면서 헤즈볼라의 공격이 중단되지 않을 경우 시리아와 레바논을 향한 대규모 공격이 있을 것임을 경고한 바 있다.
▲ 의미 및 영향
이스라엘과 시리아간의 분쟁은 두 단계를 거쳐 확대, 진행되었다. 첫 단계의 분쟁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이 건국됨과 더불어 시리아가 아랍국가의 일원으로 대이스라엘 전쟁에 참여하면서 비롯되었다. 두 번째 단계의 분쟁은 제3차 중동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이 시리아 영토인 골란고원을 점령함에 따라 시작되었다. 첫 번째 단계의 분쟁은 엄격한 의미에서 보면 시리아가 이스라엘에 대해 적대적 행동을 취하지 않는 한 재발되지 않을 수 있었다. 시리아 자체의 생존이 걸려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리아가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에 의해 영토를 점령당하게 됨에 따라 양국간의 분쟁은 해결되기 어려운 국면으로 빠져들었다. 이 분쟁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둘러싼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간의 대립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악화될 경우 중동지역 전체의 평화와 안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에서 미국과 인접 아랍국가를 포함한 국제사회는 이 분쟁의 해결에 많은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고 있으나, 영토를 주고받는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에 협상과 해결에는 많은 난관이 있다. 양국간의 협상과 합의로 이 분쟁이 평화적으로 해결될 경우, 이는 탈냉전 이후 세계 곳곳에서 전개되고 있는 여타 영토분쟁을 관리, 해결하는 데도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양국간의 분쟁이 해결되지 않고 지속될 경우 한국은 유엔이 골란고원에서 전개하고 있는 분쟁 감시활동에 참여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추후 전망
이스라엘과 시리아간의 분쟁은 두 가지 국면이 얽혀 전개되어 왔다. 하나는 아랍의 대의를 위해 시리아가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에 참여했고, 이스라엘도 생존을 위해 시리아에 대한 전쟁을 벌여야 했다. 그러한 전쟁의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시리아 영토의 일부를 점령, 합병했으며 오늘날까지도 반환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이스라엘과 시리아간 분쟁의 장래는 이스라엘이 전쟁을 통해 점령한 시리아 영토의 반환 여부에 달려있다. 이스라엘이 골란고원을 점령하고 있는 것은 시리아에게 직접, 간접으로 군사적 위협을 제기한다.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커스가 그곳으로부터 불과 37마일 거리에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골란고원의 점령은 전략적 입지를 높여줄 뿐만 아니라 수자원(이스라엘 식수의 30%를 골란고원에서 공급)의 안정적 공급을 보장해 준다. 이스라엘은 점령 영토를 반환할 경우 완충지대의 상실과 국토의 축소를 감내해야 하고 시리아는 어떻게든 잃어버린 영토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양국간의 분쟁은 해결되기 어렵다. 시리아에게 아랍의 대의는 이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중동 각 국가들에게 이제는 아랍의 대의보다 국가이익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리아로서는 어떻게 하든 빼앗긴 영토를 되찾아야 하며, 이스라엘로서는 쉽게 반환할 수가 없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양국간의 분쟁은 이스라엘의 획기적인 영토 양보가 없이는 해결되기 어렵다.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중재로 양국이 평화협상을 벌이게 될 것으로 전망되나 분쟁의 궁극적 해결에는 많은 난관이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과 시리아는 공히 평화협상과 관계개선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나 골란고원의 반환을 둘러싼 양국간의 입장 차이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 참고자료
△ 주요 일지
1948년 5월 제1차 중동전쟁 발생
1967년 6월 이스라엘, 제3차 중동전쟁을 수행하면서 시리아의 골란고원 강점
1971년 4월 아사드 대통령, 시리아 국경에서의 대 이스라엘 게릴라 활동 금지 조치 강구
1973년 10월 제4차 중동전쟁 발생
1974년 10월 시리아, 모로코의 리바트에서 열린 아랍정상회담에서 요르단강 서안지역에 대한 PLO의 요구가 인정되도록 지원
1981년 12월 이스라엘, 골란고원 합병 후 유태인 정착촌 건설(92말, 33개소) 등 자국화정책 추진
1991년 7월 14일 시리아, 부시 미국 대통령의 중동평화안 수락
1992년 7월 이스라엘의 라빈 정권 출범을 계기로 평화협상 분위기 조성
1994년 1월 16일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제네바에서 클린턴 미 대통령과 회담, 골란고원에서의 이스라엘군 전면 철수 요구
1994년 8월 미 국무장관-이집트 대통령-PLO의장간 시리아-이스라엘간 평화협상 방안 논의
1994년 6월 이스라엘-시리아간 평화협상 개시
1995년 6월 27-29 이스라엘-시리아 대표, 워싱턴에서 회담 개최
1995년 12월 미국에서 평화협상 재개
1996년 초부터 미국/이집트, 양국간 평화회담 추진 노력
1997년 1월 이스라엘 평화회담 재개 의사 표명
1998년 7월 16-18일 시리아의 아싸드 대통령 프랑스 방문; 프랑스, 골란고원의 시리아 반환 동조
1998년 7월 22일 이스라엘 의회(Knesset), 점령영토 철수 전 국민투표 실시 법 통과→시리아, 동 법 통과는 "전쟁선포"와 같다고 비난
1999년 11월 시리아 신문, 이스라엘 라빈 총리의 골란고원 반환 약속이행이 평화협상의 주제가 되어야 하고 미국은 이를 위한 압력을 이스라엘에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
1999년 12월 이집트, 캠프 데이비드 평화협상에 대한 불만 토로→미국은 이스라엘이 시리아와 평화협상을 완결할 때까지 이스라엘과 군사적 협력관계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 클린턴 대통령, 이스라엘 바락(Barak)수상과 시리아 샤라 외무상간의 평화협상 중재(16)→2000년도 평화협상 일정 조정; 이스라엘, 시리아에 대한 화해 시도의 일환으로 5명의 헤즈볼라 게릴라 석방
2000년
1월 이스라엘-시리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에서 평화협상 재게; 이스라엘인 15만 명 텔아비브에서 정부의 골란고원 반환에 반대 시위; 이스라엘-시리아 평화 협상 난항; 미국, 시리아와 평화협상(골란 고원 반환)에 대한 175억불 대이스라엘 보상을 의회가 반대→이스라엘, 미국에게 100억불 현금과 중고 무기로 보상 요구
2월 시리아, 1996년 이후 이스라엘의 레바논 최대 규모 폭격에 대해 "중동평화를 뿌리째 흔드는 일"로 비난→이스라엘의 동 폭격은 헤즈볼라의 배후로 간주하고 있는 시리아를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AFP)
6.10 시리아의 아사드(Hafez al-Assad) 대통령 사망, 아들인 바샤(Bashar al-Assad)가 권력 승계
11.1 이스라엘, 골란고원의 유태인 정착촌 확대 계획. 아파트 1,500세대를 신규로 건설하고 수도공사도 실시 예정
2001년
1.27 팔레스타인 3명, 레바논 국경을 통해 이스라엘에 잠입하려다가 이스라엘군에 발각되어 2명은 사살되고 1명은 부상 후 체포됨. 이들은 시리아가 후원하는 PFLP-GC(Popular Front for the Liberation of Palestine-General Command) 소속으로 알려짐
4.16 이스라엘군, 레바논내의 다르알바이다르에 주둔하고 있는 시리아군 레이다 기지 공습
9.13 헤즈볼라, 레바논 상공을 비행하는 이스라엘 전투기를 향해 대공포 발사
9.16 헤즈볼라, 레바논 상공을 비행하는 이스라엘 전투기를 향해 발포
2002년
2.4 이스라엘, 이란으로부터 헤즈볼라에게 공급된 로켓 8천기가 이스라엘 공격에 사용될 경우 이스라엘은 동원 가능한 모든 방법(레바논 재침공 혹은 시리아와의 전쟁 불사)을 사용하여 중지시킬 것을 천명
8.29 헤즈볼라, 4개월만에 Shebba Farm지역에 대한 박격포 공격을 재개하여 이스라엘 병사 3명 부상; 이스라엘, 헬리콥터와 포를 동원하여 보복하는 한편 헤즈볼라의 공격이 중단되지 않을 경우 시리아와 레바논을 향한 대규모의 공격이 있을 것임을 경고
△ 참고 사항
유엔분리감시군(UNDOF: UN Disengagement Observer Force): 1974년 6월이래 골란고원에서 4개국 군 1046명/감시요원 70명 활동 중
평화협상 시 이스라엘 요구 사항: (1) 시리아군 감축 (2) 시리아 내 비무장지대 설치 (3) 이스라엘인의 시리아내 경제권을 포함한 "정상 관계"
내용출처 : [인터넷] http://www.kida.re.kr/wo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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