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이전의 아라비아 상황
아리비아는 거대한 직사각형을 이루고 있다. 북쪽에는 비옥한 초승달(Fertile Crescent) 지역이고 동으로는 페르시아만 남으로는 인도양이 위치하고 있다. 반도의 남서쪽 모퉁이에 위치한 예멘은 물이 많은 산악지역이어서 일찍부터 농업이 발달하여 정착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대부분 물이 없는 스텝(steppes)과 사막 지역을 이루고 있으며, 거주민의 대다수는 유목민이어서 목축을 하거나 오아시스나 경작지 주민을 습격하여 생계를 꾸렸다.
남북 아라비아의 문화는 세월이 지나면서 많은 차이를 가져왔다. 남아라비아라 하면 예멘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물이 풍부하여 오랜 정착 생활로 군주제라는 정치 조직을 가지고 있었고, 대부분 가부장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사바(Sava, BC 610-115), 제1 힘야르(Himyar, BC 115-A.D 300), 제2 힘야르(378-525) 왕조와 같이 일찍부터 중앙 집권제가 발달하여 마리브(Marib)댐을 건설하여 관리하였다. 여기서 사바는 구약 성서의 시바(Siba)이다. (열왕기상 10장)
반면 북부 아라비아인들은 오아시스 주변의 정착민을 제외하고는 반목축 유목생활을 했다. 그들의 지배적인 사회제도는 베드윈(Bedouin)의 부족 주의였다. 사막 생활의 어려움으로 인해 본능적으로 집단으로 뭉쳐 살게 되었다. 이 집단의 결속력은 가부장적인 혈족 관계를 바탕으로 생겨난 강력한 것이었다. 개인의 피해도 당사자의 사사로운 피해가 아니라 가족, 씨족 심지어 부족 전체의 일인 것이다. 또한 이들은 물이 찾아 정처 없이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시기에 일정한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이들의 생활 영역은 어느 정도 한정되었으므로 이것이 그들의 영역이라 생각되었고, 그 영향권 아래 들어오는 것은 침입으로 간주되어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 이들의 생활은 궁핍하였으므로 대상(Caravan)이나 오아시스의 정착민을 습격하여 약탈을 일삼았다. 이 약탈은 경제적 궁핍에서 나오므로 반도의 거주민들 조차 이 행위가 도덕적으로 나쁘다고 보지 않고 사냥의 연속이라고 생각해 주었다.
이슬람 이전의 아라비아 종교
예멘의 사람들은 별을 숭상하는 다신교를 믿었으며, 아랍인은 자연 숭배자로서 큰 바위나 샘물 등을 믿어 신봉했다. 또한 이들 아랍 부족들은 부족 각각의 남성신과 여성신을 섬겼는데 가장 유명한 세 신이 마나트(Manat), 웃자(Uzza), 와 알랏(Allot)이었다. 또한 이들 세 신 중에서도 최상의 신인 알랏(Allot)에게 예속돼있다. 이 알랏이 후에 알라(Allah)의 기원이 되었다. 또 카바(Kabat)라는 곳에 커다란 직육면체의 돌도 섬겼고 또 그곳에 수백 개의 우상도 세워져 있어서 수많은 순례자들이 찾았다. 이것은 후에 이슬람의 성지순례에 영향을 끼쳤고, 그 예식 중 카바의 돌에 입을 맞추거나 쓰다듬는 의식도 발생하게 되었다. (마호멧의 마지막 순례:(이별의 순례)중의 일을 본받아 진행함.
당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선교 활동도 활발하였다. 하지만 주로 단성론자들과 네스토리안교[1]들이었으며 상당수의 아랍의 개종자들을 얻었다. 이미 이것들은 에페소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판명이 났으며, 그로 인해 상당수의 교도들이 박해들 피해 페르시아와 아라비아 반도로 건너와 선교 활동을 수행하고 있었다
[1]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각각 존재한다는 이성설을 주장하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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