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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다원주의? 열린중심주의!!

지평선의순례자 2007. 5. 13. 18:07
    
  
 
종교다원주의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께 드리는 얘기입니다..
다른 데서도 올린 적이 있는 글인데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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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기독교의 이웃종교에 대한 태도로

1. 배타주의 - 내 종교가 아니면 안된다는 태도
(그리스도교 내 근본주의/복음주의자들의 입장)

2. 포용(포괄)주의 - 네 종교에도 진리가 있다. 그러나 내 종교에 와서 더욱 완전한 진리를 얻으라는 태도
(칼라너 '익명의 그리스도인', 제2바티칸 공의회에서 채택된 가톨릭의 입장)

3. 다원주의- 서로 대화하고 서로 아는 것을 나누면서 함께 진리에 더욱 가깝게 나가자는 태도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우리가 실재에 대해 아는 것은 제한된 것,
함께 앉아 우리가 만져서 알게 된 것을 서로 나누자는 것. (보통은 캐나다 연합교회 같은 진보주의 교회나 신학자들의 입장)

이렇게 대표적인 3가지 분류로 거론되곤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Paul Knitter의 2002년도 책인 Introduciing Theologies of Religions를 보면 다시 네 가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침고로 오강남 선생님의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책에도 그 소개가 약간 나옵니다..

1. 대체모형(Replace model) - 네 종교는 안 되고 내 종교가 네 종교를 대체하도록 하라. (배타주의)

2. 충족모형(Fulfillment model) - 네 종교도 좋지만 아직도 모자란다. 내 종교를 받아들여 완성하도록 하라. (포용주의)

3. 상호모형(Mutuality model) - 너의 종교 나의 종교에는 서로 공통되는 것이 많으니 우리는 이것을 함께 배워나가자. (다원주의)

4. 수용모형(Acceptance model) - 너의 종교 나의 종교에는 서로 다른 것이 많다. 일단 서로가 선 자리, 즉 서로의 다름들을 인정하면서 그 차이를 통해 배울 게 있으면 배워나가자.(열린 중심주의
 

결국 1은 앞 분류와 연관지으면 배타주의, 2는 포용주의, 3은 다원주의,
그런데 여기서 4는 새로 발견된 입장(저는 이것을 '열린 중심주의'라고 부름)인데, 물론 저의 입장이구요..
저는 그래서 배타주의, 포괄주의, 다원주의, 열린중심주의 이렇게 넷으로 나눠서 보며, 바로 네 번째 입장입니다..

(*한국 기독교계에서 <종교다원주의>라는 표현자체는 그 이론의 내용을 접하기도 전에
상당히 부정성의 느낌이 없잖아 있습니다.. 그래서 김경재 교수는 <종교다원주의>라기보다
<종교다원론>이라고 주로 표현하기도 하죠.. 물론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속에 담긴 뜻과 내용일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다종교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자세가 무언지 생각해보니까..
자신의 종교는 아주 완벽하고 완전하다는 생각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매우 중요한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완벽'이란 어떤 의미에서 죽은 것이며 거기에서는 더이상의 발전도 없고
진전된 통찰의 느낌도 사라집니다.. 그래서 '충족된 완전'이란 건 곧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진리 혹은 종교는 언제나 형성과정상에 있습니다..

이런 태도가 겸비된다면 결국은 저는 '열린 중심주의'가 좀더 타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럴경우 일단 무뇌아가 아니라면 정체성의 차원에서 그 어떤 종교를 택할 수는 있다고 봅니다..
정체성 없이 뭐든 무뇌아적으로 시작할 순 없습니다..
무릇 모든 사람이 그 어떤 자기 정체성(=중심) 없이 살아갈 수는 없잖아요..

이때 <열린 중심주의>는 뭐든 혼재된 <다정체성>이 아니라
확고한 자기 정체성을 가져가면서 여러 다른 종교들에게도 열려 있을 수 있다
는 것입니다..

<열린 중심주의>는 각기 여러 고등종교들을 곧바로 인정하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는 내 종교를 내 삶의 중심으로 삼아가면서,
내 종교엔 없지만 옆에 있는 이웃종교의 기제들이 보다 유익하다고 여겨질 때
혹은 내 종교에 있던 기제들이 자꾸 오류와 폐해를 발생시키고 있을 때 그제서야
지혜롭게 다른 종교의 측면도 돌아볼 수도 있고 또한 배워나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우선적으로는 자기 종교를 먼저 배우고 익혀나가자는 거죠..

부처님 공자님 말씀 다 좋고 좋습니다만 기본적으로는 예수의 말씀과 삶이야말로
우리 삶의 교본이고 우리 삶의 정체성으로서 표방한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가까운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데, 굳이 먼데가서 치료받을 거까진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흔히 이렇게 말하곤 하지요..

"<오직 예수>만 믿어라, 대신에 제발 좀 깊게 믿어라"고..

하지만 내가 속한 기존 기독교에도 그 발전과정에 있어 여전히 부족한 점도 없잖아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 부족함 혹은 그 오류가 발견될 경우에는 그 자신의 부족함을 메꾸고자
기독교 바깥에도 또 뭐가 있는지 충분히 둘러볼 수 있지 않을까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 <자족적인 자기폐쇄성>에 머물수밖에 없겠죠..

기독교 발전과정에서도 보면 이웃종교들의 어떤 영향도 없이
순수하게 독립적이고 고립된 자기발전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캐치한다면
결국 자기 안에 심각한 오류가 발견될 경우에는 과감한 결단까지 내릴 수 있어야지요..

하나님의 역사적 경륜을 보면 하나님이 기독교 신자 안에서만 활동한다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활동을 폐쇄적이고 축소시켜 놓고 있는 입장 밖에 되질 않을 것입니다..
어떨때는 하나님도 비기독교인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역사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럴 경우에는 오히려 우리들도 그 뜻을 읽고 계속 정진하고 배워나가야 하지 않나요..
즉, 오류와 비극 앞에선 언제든지 겸허한 기독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존캅의 <그리스도 중심적 다원주의>도 크게보면 <열린 중심주의> 맥락에 있는 것입니다..
그는 기독교와 불교는 엄연히 다르며 그 차이를 통해 자기정체성을 다져나가야 한다고 보고 있죠..

그렇다면 소위 말하는, 종교 간의 대화의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상호변혁>이라는 것입니다..
즉, 서로를 보다 더욱 진전되게 혹은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상호변혁>이야말로
그나마 얘기할 수 있는 종교 간의 대화의 목적
이라고 봅니다..

열린 중심주의는 어떤 면에서 포용주의 입장과 비슷할 수 있지만,
<자기 오류 가능성>도 인정한다는 측면에서 포용주의와 다르지요..
(그렇지만, 현재까지도 자행되고 있는 배타주의의 폐해를 본다면 그나마 '포괄주의'도 유용하지 않을까싶지만)

물론 다른 건 몰라도 기독교 전통교리나 그 구원역사만큼은 적어도
아주 완벽하며 오류가 없다고 볼 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오류가 문명사적으로 적용된 것이 바로 비극이라고 봤을 때
사실 우리의 기독교 역사를 보면 너무나 비극으로 점철되어 있지 않는지요..
수많은 종교전쟁들이 <자기종교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고서
서로 피를 흘리며 자기만이 옳다며 싸우고 있는 거 아닌가요?

곰곰히 생각해보면, 성령의 9가지 열매들이 인류 역사에서 볼 때
그것은 지금까지 기독교 안에서만 열매맺고 있었던가요?
하나님과 성령님은 기독교 밖에서도 언제든지 활동하고 계신 분 아닌지요..

내가 아무리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나 자신마저 이미 완벽할 순 없는 노릇입니다..
물론 깊게 들어가면 이 괴리는 모든 존재의 고유한 자율성 때문에 빚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사실 종교다원주의를 <혼합주의>라고 비판하지만,
존재론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모든 문화는 이미 기본적으로 크로스오버적이고 하이브리드적이라는 사실입니다..

기독교의 형성과정에도 다른 종교문화들은 전혀 유입되지 않았을까요?
예컨대 구약의 페르시아 종교사상이나 고대 근동의 신화 혹은 제도와 관습들 등등 말입니다..
이미 기독교의 성탄절도 그 기원을 따져물을 경우
로마의 태양신의 종교에서 유래된 것임은 익히 잘 알려져 있지 않나요?

만일 혼합주의라는 비판이 타당성을 지닐려면
그것이 일관성을 겸비하지 않고 그저 절충적 혹은 나열적으로 조합된 짬뽕주의일때
그러한 혼합주의라면 비판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어찌되었든 모든 사물은 혹은
모든 정체성은 기본적으로 혼합교배되는 가운데 그 창조적인 유니크함이라는 독특성을 확보해나갈 뿐입니다..

존재의 동일성까지도 차이의 연속들에 의해 유지된다는 사실은
근대를 넘어서고자 했던 20세기 철학의 주된 발견들이었잖아요..

분명히 말하지만,
자기 종교의 오류가능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내가 믿는 하나님의 오류를 인정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하나님을 믿는 나 자신에 대한 오류가능성마저도 열어놓고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은 결코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만 가지고도 깊이 이해하고 파고 들어간다면
나 자신을 넘어선 보다 <거대한 협동>의 시스템을 떠올려야 할 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래의 '이웃종교에 배타적인 종교에서 <열린 종교>로' 참조
http://freeview.org/bbs/tb.php/b001/16

여기까지만 하죠.. 평안하시길~

하나님 나라 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