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에 비하면 나는 천사다
예수에 비하면 나는 천사다
문득 생각났다. 오랫동안 관련을 맺어왔던 한 사이버 커뮤니티의 책임자로부터 퇴출당한지 꽤 되었다는 사실을. 퇴출의 이유는 ‘매사를 부정적으로만 보고 언제나 논쟁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그 커뮤니티는 단순히 회원들간의 친목만을 도모하는 여타의 많은 커뮤니티와는 달리, 회원간의 '나눔'을 통해 'Win-win'을 추구하는 '열린 광장'을 지향한다는, 상당히 진취적이고 이상적인 목표를 줄곧 표방해왔다. 따라서 비슷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이는 대다수 동호회와는 달리 그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은 상인, 교수, 판사, 주부, 성직자, 스님, 음악가, 화가, 학생, 선원, 기술자, 농민 등으로 대단히 다양했다. 직업과 신분이 다양하다보니 각자의 생각도 다양할 수밖에 없었는데, 한 가지 그렇지 않은 점은 그 커뮤니티가 기독교를 노골적으로 표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운영자를 비롯한 회원 대부분이 기독교인이라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기독교 신앙과 교회 등에 관련된 내용의 글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교회의 장로님이었던 그 커뮤니티의 운영자는 개설 때부터 내게 참여 및 활동을 강력하게 권했다. 하지만 성경 본래의 메시지보다는 헤게모니를 독점한 일부 종교 지도자의 메시지에 길들여진 우리 사회의 일반 기독교인들로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삐딱한’ 종교관을 가진 나는 그 커뮤니티 활동이 반갑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책임자가 나와 같은 종교를 가지고 같은 신을 믿는 ‘형제’인데다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내 종교적 성향을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보이는 터라 조심스럽게나마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커뮤니티에서의 내 비중은 제법 높았다. 한 때는 수도권을 총괄하는 동시에 기술적인 문제까지 총괄하는 상당한 감투까지 누리는, 조금 과장하자면 제 2인자 정도에 해당하는 지위를 누렸다. 그러면서 책임자의 강력한 권고로 평소의 내 종교적 신념을 담기는 했으나 독자들의 입장을 최대한 고려한, 내 나름대로는 최대한 순화시킨 글들을 올렸다. 독자들 중에는 기독교 외의 타 종교나 종교가 없는 사람들, 심지어 기독교라면 심한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사람들도 있기에 그들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다. 사소한 용어 하나조차도 ‘하나님’ 대신 ‘하늘’ 또는 ‘그 분’, ‘하나님의 뜻’ 대신 ‘하늘의 뜻’ 또는 경우에 따라 ‘섭리’, ‘예수님’ 대신 ‘2천 년 전의 목수 청년’, ‘주 안에서’ 대신 ‘하늘의 뜻에 따라’ 등 가능한 한 거부감이 덜 한 것을 골라서 사용하고 글의 주제도 일반인들은 별 관심 없는 종교적 가치보다는 보편적인 상식이나 가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을 다루었다. 개인적으로 현재의 장로님 정권을 끔찍하게 혐오하지만, 보수적(진정한 의미의 ‘보수’가 아닌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의미로서의 ‘보수’)인 사람들이 많기에 정치 문제는 가급적 꺼내지 않았다.
초반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글들에 대하여 충격을 받고 동감하고 있음을 댓글들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들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내 글에 불편함 내지는 반감을 가지고 있음을... 또한 그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타 종교나 종교가 없는 사람들보다는 기독교인들임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내 글이 점점 많아지면서 ‘침묵하는 다수’인 그들의 인내심도 점점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부끄럽습니다, 간디 선생님’이라는 제목의 아주 짧은 글을 올린 3년 전의 어느 날이었다.
- 부끄럽습니다, 간디 선생님 -
난 예수님을 좋아하지만 기독교인은 싫어한다. 그건 그들이 예수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 마하트마 간디
이 글에 어떤 목사님의 다음과 같은 댓글이 달렸다. 기억력의 한계로 정확하게 적을 수는 없으나 이런 요지의 댓글이었다.
이런 글 쓰지 마쇼. 내가 간디에 대해 잘 아는데, 예수 믿지 않는 그런 불신자가 한 말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교회를 비방하는 말을 하는 거요?
나는 소모적인 논쟁을 피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는 일이 있어도 평소에 내 글의 댓글에 대한 반박 댓글을 거의 달지 않는다. 다만 이때는 댓글을 달아야 할 필요를 느꼈다.
- 목사님, 제가 간디의 말을 소개함으로써 간접적으로 기독교의 문제를 제기한 것은 간디가 예수보다 위대하거나 동격이라서가 아닙니다. 종교를 떠나서 간디가 인류의 위대한 스승인 것만은 사실이고, 그 분이 지적하신 것처럼 저를 포함한 우리 기독교 신앙인들이 예수를 닮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교도인 간디 선생의 삶이 예수와 닮았음을 부끄럽게 생각하자는 취지입니다. 우리가 예수와 닮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했다는 사실은 적어도 간디가 우리 평균적인 기독교인들보다는 어떤 점에서는 예수를 바로 이해했다고 저는 보았기 때문에 저는 부끄러움을 느낀 겁니다.
그 이후로 내 글에 반감을 드러내는 댓글들이 늘어나고, 글을 올리고 나면 으레 커뮤니티 책임자의 전화가 걸려왔다. 수차례에 걸쳐 누적된 그 대화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대충 다음과 같았다.
- 글 잘 읽었다. 글 내용에도 상당 부분 동감한다. 게다가 재미있고 재치 있어서 유쾌하다. 그런데 아쉽게도 모두가 당신이나 나처럼 생각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회원 중의 누군가가 전화해 이런 저런 말을 하더라.
- 글을 쓴 건 나다. 할 말이 있으면 내게 전화하든지 댓글로 의견을 말하면 될 것을, 왜 엉뚱하게 운영자에게 전화해서 뒷말을 하는가? 자신이 나서긴 싫고, 뒤에 숨어 누군가를 앞세워 나를 통제하자는 건가? 그리고 내 글은 나와 달리 생각하는 이들의 사고를 바꾸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쓴 것도 아니고, 논리적으로 그들을 제압할 만큼 잘 된 글도 아니다. 그저 ‘내 생각은 이렇고 나는 이렇게 본다’는 글이다.
- 사람들 말이 당신은 매사를 부정적으로 본다고 한다. 좀 더 긍정적인 글을 쓸 의도는 없는가?
- 내가 글에서 지적한 것이 좋은 사실을 왜곡시켜 나쁘게 말한 것이라면 부정적이라는 그 말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누가 봐도 잘못된 것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한 것이다. 과연 나쁜 것을 좋게 말하는 것이 ‘긍정적’인 것인가? ‘문제 제기’를 ‘부정적’으로 해석한다면 예수는 지독하게 부정적인 사람이다. 아무 자격도 없는 시골 무지렁이 주제에 당시의 최고 교회에서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던 제물 판매 사업을 폭력으로 뒤집어엎질 않나, 거룩한 주의 종인 교회의 최고 지도자들에게 순종은 고사하고 모든 백성들이 보는 백주대낮에 면전에서 ‘독사새끼들’이라는 극언을 퍼부었으니 이보다 더 부정적이고 삐딱한 악당이 어디 있는가? 난 거기에 비하면 천사다. 그리고 분명히 말해 나는 성경의 원 뜻에 충실한 신앙 형식인 본래적 의미의 기독교에 대해서는 뭐라 말할 것도, 그럴 자격도 없다. 내가 비판하는 것은 ‘아무 말 말고 이X박 찍어. 안 그러면 내가 생명책에서 지워버릴 거야’ 따위의 망발을 하는 자칭 목자라는 인간 말종들과, 그런 악마의 말에 최소한의 저항은커녕 ‘할렐루야 아멘’을 외쳐대는 영혼을 팔아먹은 좀비들의 집단으로 변질된 가짜 기독교이다.
- 다 좋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우리 커뮤니티에는 목사님들도 많고 장로님들도 많은데 그 분들 입장을 생각해서라도 수위를 좀 조절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당신의 글들이 교회를 분열시키고 더럽힌다고 생각한다.
- 똥물에 뒹굴어서 냄새나는 사람에게 누가 ‘네 몸에서 똥냄새 나니 목욕 좀 해라’라고 말하면 그 말 때문에 그들이 더러워진 건가? 그리고 우리 커뮤니티에 계신 아무개 아무개 목사님은 아닐 것이다. 그분들 정도라면 최소한 내 글에 대해 그렇게 닫힌 생각을 하지는 않으실 거라 본다. 그리고 혹시라도 본의 아니게 내 글이 그 분들 심사를 불편하게 해 드릴까봐 그동안 모임 때마다 그분들에게 개인적으로 접근해 양해도 부탁드리고 나름대로 애교도 떨었다. 그 분들도 내 생각을 흔쾌히 받아들이셨다.
게다가 당신도 내 생각이 이렇다는 것을 몰랐을 리 없고, 내가 글을 쓰면 이런 반응을 보일 사람이 틀림없이 많을 거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글을 써달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그 전화 건 당사자에게 설명을 하거나 아니면 그의 말을 내게 전달하지 말고 혼자만 듣고 묻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평하는 사람들의 말을 내게 전하는 것은 당신도 내심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밖에는 생각하기 어렵다.
- 물론 당신 말이 옳다. 나는 언제나 당신을 아낄 뿐 아니라 당신의 사상을 존중하고 지지한다. 하지만 아무리 당신 말이 옳다고 해도 당신 글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다면 자제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 그래서 처음에 글을 써 달라고 부탁했을 때 여러 번 안 쓰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지금이라도 쓰지 말라고 하면 그렇게 하겠다. 사실 글 한 편 쓰기도 너무 피곤하고, ‘네 번째 왕’ 만드는 일 때문에 정말 시간도 없어서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 글을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그 좋은 글 솜씨로 끝없이 논쟁을 유발하기보다는 이왕이면 다른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는 긍정적인 글을 써 달라는 것인데 뭐가 그리 어려운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런 글 쓴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운영자의 이 말에 나는 작심을 하고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 난 내 생각과 다른 글을 쓸 수는 없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 커뮤니티는 ‘나눔’을 실천하는 ‘열린 공간’을 강력하게 표방하지 않았나?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것을 똑같은 분량만큼 가지고 있다면 ‘나눔’이란 있을 수 없다. 사람들의 가진 것과 생각, 사상의 ‘다름’을 인정해야 ‘나눔’이 성립할 수 있다. ‘다름’을 ‘틀림’으로 여긴다면 수평적 ‘나눔’은 듣기 좋은 구호일 뿐, 사실 구성원 전체가 아닌 일부의 가치만 인정되고 모두가 그에 따라야 하는 ‘추종’과 ‘획일화’ 아닌가? ‘열린 공간’이라는 말도 말 뿐, 실제로는 금전적 손익이 오가는 물건도 아닌, 서로간의 지식이나 생각조차 용납되지 않는 ‘닫힌 공간’일 뿐이다. ‘골목’은 한 동네에 사는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주인이라 해도 별 문제 없지만, ‘광장’은 그곳에 모이는 다양한 사람들이 주인이라야 한다. 우리 커뮤니티 이름의 일부인 ‘광장’이라는 단어가 부끄럽지 않은 운영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 글이 논쟁을 유발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나도 완벽하게 인정한다. 하지만 논쟁이 그렇게 나쁜 것인가? 논쟁이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의견 교환 행위인데, 이것을 좋지 않은 것으로 보는 것이야말로 ‘부정적인 태도’ 아닌가? 사람들이 모이다보면 서로의 입장과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논쟁은 당연히 뒤따르는 것이다. 물론 논쟁은 시끄럽고 골치 아프고 비효율적이고 비용도 많이 든다. 그래서 쉽게 헤게모니를 장악한 일부 구성원의 가치 앞에 사람들을 일사분란하게 줄 세우기 위해 논쟁을 없앤 독재가 등장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쥐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계급 높은 장로님이 원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다수결이라고 오해하는데, 다수결은 일부가 아닌 다수에 의한 또 다른 독재일 뿐이다. 다른 견해를 가진 구성원들이 골치 아프고 비용이 들고 빨리 결론이 나지 않는 토론을 통해 공동의 이익을 위해 각자의 입장을 조율한 후 표결을 하는데, 이때도 모든 구성원들이 표결 결과가 자신의 이익과 반하더라도 인정하고 따르겠다는 합의가 전제되는 것이고, 그것 때문에 다른 의견을 가진 구성원도 기꺼이 결과에 따를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구성원이 그 결정의 주체가 되기 때문에 ‘다수주의’가 아닌 ‘민주주의’ 아닌가?
난데없는 민주주의 강의까지 등장할 정도로 이야기는 한 없이 퍼져나가 복잡한 가지를 치고 무성하게 자라나곤 했으나 어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짧은 세 치 혀로 바꾸겠는가? 언제나 결론은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해 글을 더욱 자주 쓰되, <긍정적>으로’였다.
그 이후의 진행 상황은 굳이 서술할 필요가 없기에 이 글은 느닷없이 끝날 팔자다. 시끄러움을 피하기 위해 한동안 글을 안 쓰다가 운영자의 재촉으로 내 나름대로는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글을 올리고, 그 솜사탕을 먹다가 숨어있던 바늘에 입안이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의 운영자 압박, 언제나 똑같은 스타일의 운영자의 당부와 나의 고집. 이 일련의 반복 끝에 새로운 운영자가 커뮤니티 책임자가 되었고, 이를 계기로 커뮤니티의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하고, 애초의 취지에 부합하는 진정한 열린 광장을 모색하자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그 글은 새 운영자에 의해 블라인드 처리되었고, 그 날로 나는 그 커뮤니티에서 퇴출당했으며, 영문을 모르고 있던 회원들은 한 순간에 사라져버린 내 글들에 의아해하며 작은 소동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