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장들의 종교와 야훼 신앙
다음은 기독교문서선교회에서 출판 예정인 리차드 히스의 <이스라엘의 종교>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창세기에 나타난 족장들의 종교와 모세로부터 시작한 야훼 종교를 비교 서술한 것이다.
출애굽기와 신명기까지 나타나는 모세의 야훼 종교와 (혹은 이 책들에 호소하는 구약의 나머지 부분과) 대조되는 이스라엘 종교의 특징들을 창세기 12-50장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창세기의 이스라엘 종교는 열려있고 포괄적이다. 인종에 관계없이 같은 하나님을 섬기고, 창세기에는 다신교에 대한 언급이 없다. 하나님은 이집트의 파라오든, 아비멜렉이든, 아브라함이든 누구에게나 말씀하신다.
둘째, 족장들과 가나안 사람들의 종교 관행 사이에 적대 관계가 없다. 창세기 12-50에서 다른 신들의 제단을 파괴하거나 그들의 우상을 파괴하는 이야기가 없다. 야훼와 다른 남녀 신 사이의 갈등관계도 창세기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셋째, 창세기에서 아브람과 그 후손들의 예배를 나무나 (아브람이 제단을 쌓았던) 돌기둥과 연관지우기도 한다. 그러나 예배를 위해 지정된 장소라든가, 안식일, 음식법 등은 찾아 볼 수 없다. 또한 할례가 이스라엘의 후손에 속해 있는 사람들 뿐 아니라 이스마엘에게도 행해졌다.
넷째, 창세기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종교에는 선지자와 제사장이 없다. 일부 학자는 가족의 가장이 제사장 역할을 했다고 주장할 수 있겠다.
다섯째, 아브람과 그의 후손들은 떠도는 이들로 살았고 가나안, 아모리 이웃과 평화롭게 지냈다. 약속의 땅에서의 그들의 역할은 그 땅에 이미 정착한 사람들의 일부 혹은 전부를 쫓아내는 것이 아니었다.
여섯째, 도덕적 순종이 그다지 중요한 주제가 아니다. 이것은 출애굽기19-40장의 사건, 즉 시내 산에서 토라를 주기 전에는 법 체계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일곱째, 창세기에서는 배타적인 성격을 가지는 거룩함이 강조되지 않았다. 아브라함의 가족에서 축출 당하는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갈과 이스마엘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개인적 경쟁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덟째, 하나님 약속의 성취를 위한 가족의 중요성, 그리고 후손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고대 근동, 특히 서부 셈족의 종교에서 가족의 가장은 종교 생활의 중심에 서 있다. 가장이 가문을 이을 후손을 생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였다. 각 세대의 지도자는 늙고 병든 노인들을 돌보고 “먹여 살려”야 할 의무가 있었다.
아홉째, 창세기 12-50장에서 엘로힘이라는 이름은 야훼보다 더 기본적인 이름이다. 그러나 창세기 12-50장을 넘어가면 상황은 그 반대다. 나아가 바알을 비롯한 다른 신들의 이름이 창세기 12-50장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다.
열째, 예루살렘은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지 않는다. 창세기에서는 어떤 중요한 일도 예루살렘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창세기 14:18의 살렘 혹은 창세기 22:2의 모리아가 예루살렘과 연결된다면 중요한 전통이 그 장소와 연결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을 바친 장소나 멜기세덱 왕이 다스린 지역이나 어느 하나 확실한 것이 없다.
이상에 언급된 창세기의 독특성에 근거해 월터 모벌리(Walter Moberly)는 창세기 12-50장에 묘사된 종교 관습의 기원에 관하여 중요한 관찰을 한다
만약… 족장들의 종교가 어떤 역사적인 실재를 가진다면 그것은 아마 참으로 오래된 종교의 어떤 형태(야훼 종교 이전)이거나 야훼 종교 내에서 비정통 계열(요시야의 개혁 이전)에 속할 것이다. 후자의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야훼 종교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인 거룩함과 배타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12-50장에 나타난 종교가 실제로 이스라엘이 야훼를 예배하는 민족 공동체로 역사에 등장하기 이전에 유래했다고 가정해도 크게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12-50장에 나타난 종교가 실제로 이스라엘이 야훼를 예배하는 민족 공동체로 역사에 등장하기 이전에 유래했다고 가정해도 크게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 이전”의 종교에 대해 가지는 함의에 대해 데일 패트릭(Dale Patrick)은 출애굽기 20장에서 십계명이 선포되기까지 우연적 예외를 제외하고 이방 신들이 전혀 창세기에서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은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가정된 것은 사람들이 아직 주어지지 않은 법을 어긴다고 그 법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른 신을 금하는 법이 출애굽기 20장에야 비로소 주어졌으므로 다른 신의 존재와 그들에 대한 예배는 그 이전의 단계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모벌리는 성경 이외의 역사적 증거들은 논외로 하고 창세기 족장 내러티브가 오경의 문맥에서 감당하는 역할에 대해 질문한다. 그럼으로써 그는 문서 비평이 제안한 해결책에 대안적인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그는 창세기 12-50장의 종교 관행들이 출애굽기에서 신명기에 이르는 성경을 예상하며 기록되었다는 이유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기다리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이삭의 역할은 아브라함과의 연속성을 강조하는데 있다. 심지어 이삭은 아브라함과 비슷한 내러티브에 등장하기도 한다(창 12, 20, 26장). 사기꾼 야곱은 삶에서 약속을 따라 신실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야곱은 여러 가지 면에서 모세의 생애를 예상케 한다. 바로와 만나기 전 광야에서 시절을 보낸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요셉은 외국에서 성공한 신앙인을 대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