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드족은 누구인가?
쿠르드족은 누구인가?
쿠르드인의 민족적 기원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BC 3,000년경,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탄생하기 전부터 쿠르드인들은 지금의 쿠르디스탄 지역에서 농경문화를 형성하며 살았다. 신석기 시대에 쿠르디스탄은 농업 기술의 발생지로 사냥, 채집 경제에서 식량 생산 경제로 전환하여, 인근 메소포타미아, 아나톨리아 동부, 이란 고원을 비롯하여, 북아프리카, 유럽, 인도에까지 농업 기술을 전했다. 본래 쿠르디스탄 원주민들은 지금의 그루지아 사람들과 같은 코카서스 계통의 사람들이었고 개별 부족중심의 독립적인 사회체계를 이루어 살고 있었다. BC 1,200년~900년 사이에 아리안족이 이곳으로 이주하여 원주민들과 동화되어 인도 유럽어족에 속하는 쿠르드인의 아이덴티티가 형성되었다. 이 때 쿠르드족을 지칭하는 쿠틸(Qutil) 이라는 이름이 최초로 등장했다.
쿠르드족의 인종
백인계 아리안족으로 기원전 7세기경 칼데아인(Caldeam)과 동맹을 맺어 앗시리아인을 멸망시킨 메디아(Media) 왕국의 건설자인 메데스(Medes)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사학자들인 헤로도투스(Herodotus), 크세로폰(Xenophon), 호라스(Horace), 타키투스(Tacitus)부터 소련의 역사학자 미노스키(V. Minosky)에 이르는 여러 학자들이 쿠르드족이 메데스족의 후손이라고 주장했으며 이 의견은 현재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쿠르드족은 스스로를 메데스족의 후손이라 믿고 있으며 실제로 쿠르드 투사들을 부르는 진군가에 이 내용이 언급되고 있다(Pelletiere, 20). 기원전 653년경 바빌로니아인들은 모든 쿠르디스탄 산악지대와 메데스를 포함한 쿠르디스탄 거주민들을 쿠틸이라고 명명했다. 메데스족은 쿠틸에서 발전된 카르두(Qardu) 혹은 카르두크(Qarduk) 라는 용어로 세분되어 쓰이기도 했다.
서기 7세기 이후 쿠르드족의 상황을 언급한 사료가 전해지고 있는데 이 기록에 따르면 쿠르드족은 아랍계, 페르시아계 왕조 휘하의 부족군이었으나 10세기에는 디야르바크르 지역을 중심으로 마르완 왕조(983~1085년)와 아제르바이잔을 중심으로 리와드 왕조(10세기초~ 1071년)를 각각 창립했다.
1370~1500년 티무르 왕조 시대에 쿠르디스탄은 현재 이란의 우르미아로부터 터키의 말라티아, 상(上) 메소포타미아 지역에까지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16세기 찰라딘 전투 결과에 따라 터키 오스만 왕조와 페르시아 사파비 왕조간의 국경이 정해지면서 그 사이에 위치한 쿠르드 지역이 분단되었고, 부족장 형태의 봉건영주의 지배 아래 소국이 난립하여 19세기까지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쿠르드 근대사
초기(1494~1918년) 시대에서 쿠르드족은 쇠퇴기를 맞이하는데 주요 원인으로는 중동 지역이 페르시아와 오스만두 제국으로 나뉘어 경쟁을 하면서 쿠르디스탄이 두 제국의 충돌지가 되었고, 1497년 바스코다가마(Vasco da Gama)가 희망봉을 횡단함으로써 국제 무역로가 변경되어 쿠르디스탄 경제가 철저히 고립되었기 때문이다. 16세기부터 해로를 이용하는 국제 무역이 급격히 늘었으며, 반면 동서를 잇는 실크로드 등의 육로 이용이 줄었다. 따라서 중동 지역을 가운데 두고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던 기술과 상품이 줄었고, 쿠르디스탄을 비롯한 고대 육로에 위치한 국가들은 경제적 힘을 상실했다.
“쿠르드족의 땅”이라는 의미를 갖는 쿠르디스탄은 셀주크 왕조 시대에 아제르바이잔과 루리스탄 사이의 하마단과 케르만샤를 중심으로 한 지방을 지칭해 온 지리적 용어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쿠르디스탄은 5개국으로 나뉘었는데, 쿠르드 전체 영토의 43%는 터키, 31%는 이란, 18%는 이라크, 6%는 시리아, 2%는 구소련으로 분할되어 있다.
터키 영토에서 쿠르디스탄에 해당하는 지역은 마드린(Madrin), 시르트(siirt), 학카리(Hakkari), 디야르바크르(Diyarbakır), 비트리스(Bitlis), 무스(Mus), 반(Van), 아으르(Ağrı) 등이며, 우르파(Urfa), 아드야만(Adıyaman), 말라xi(Malatya), 엘라즈(Elağı), 툰젤리(Tunceli), 에르진잔(Erzincan), 빈�(Bingül), 카르스(Kars)에도 상당수의 쿠르드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라크 영토에서 쿠르디스탄은 다후크(Dahuk), 모술(Mosul), 아르빌(Arbil), 슐라이마니아(Sulaimania), 키르�(Kirkuk), 타밈(Taamim), 디얄라(Diyala), 카나킨(Khanaqin), 셰이칸(Sheikan) 등이며, 이란 영통에서 쿠르디스탄은 코르데스탄(Kordestan), 사난다즈(Sanandaj), 키르만샤흐(Kirmanshah), 일람(Ilam), 말라이르(Malayir), 본지르드(Bornjird), 마하바드(Mahabad), 비자르(Bijar), 등이며, 시리아 영토에서 쿠르디스탄은 자지라(Jazira), 카미슈리(Qamishli), 피나르(Pinar), 아프린(Afrin) 등의 지역에 해당한다.
쿠르드족의 인구수
국가명 |
전체 |
쿠르드족 |
분포비율 |
터키 |
69,660,559 |
14,000,000 |
약 20% |
이란 |
68,017,860 |
4,760,000 |
7% |
이라크 |
26,074,906 |
5,000,000 |
15-20% |
시리아 |
18,448,752 |
1,290,000 |
7% |
구소련 지역 |
- |
1,000,000 |
|
기타 |
- |
2,500,000 |
|
|
|
31,550,000 |
|
측정하는 주체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쿠르드족은 인구수를 다소 과장하는 경향이 있고, 터키나 이란과 같이 쿠르드족을 소수 민족으로 지배하는 국가들은 그들의 인구비율을 낮게 보고하기 때문이다. 쿠르드 민족주의자들의 계산에 따르면 쿠르드 인구수는 대략 2천5백만명에서 3천만명에 달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쿠르드인의 인구수는 약2천만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100만명 정도의 인구를 가진 쿠르드 도시는 디야르바크르와 키르만샤흐이고, 인구 50만 이상의 도시는 안텝(Antep)과 키르쿠크이다. 인구 25만~5만의 도시는 아르빌, 다�, 하마단, 말라티야, 슐라이마니아, 우르파(Urfa) 등이다. 인구1만~25만의 도시는 아드야만(Adiyaman), 아르다한(Ardahan), 아그리(Agri), 바트만(Batman), 툰젤리(Tunceli), 엘라즈(Elazig), 에르진잔(Erzincan), 하이마나(Haymana), 이슬라히예(Islahiye), 칸가와르(Kangawar), 카나킨(Khanaqin), 마르딘(Mardin), 카미슐리(Qamishli), 카샨(Qachan), 산안다즈(Sanandaj), 샤하바드(Shahabad), 시르트(Siirt), 반(Van), 유나크(Yunak) 등이다.
쿠르드 종파
쿠르드인의 97% 이상의 순니 이슬람 샤피이 학파에 속한다. 이란 영토내의 키르만샤흐, 칸가와르(Kangawar), 하나단, 쿠르바(Qurva), 비자르(Bijar) 등 쿠르디스탄 남부와 동부 지역의 쿠르드인들은 시아 이슬람을 따른다. 데르, 엘라즈, 마라스 등지에 소수의 시아파 쿠르드 족이 거주한다. 시아파 쿠르드족의 인구 수는 1백~1백5십만 정도이며, 전체 쿠르드족의 5~7%에 달한다. 그 밖에 극단적 시아파 (굴라트:Ghulat), 터키 디림라 지역에서 믿는 수피즘, 조로아스트교와 이슬람교가 혼합된 알레비파, 키르만샤흐의 동부, 사흐네(Sahne)와 서부 케렌트(Kerend), 키르쿠크(Kirkuk) 남부의 야르사니파, 사탄의 숭배자로 알려져 있고 극단적 시아의 특성을 가진 예지드파가 있다. 샤피이학파의 쿠르드족 순니 무슬림들은 동쪽으로 이란의 시아파, 서쪽과 북쪽으로 터키의 하나피파, 남쪽으로 시리아와 이라크 북부의 하나피파 사이에 위치해 있다. 언어와 종교면에서 쿠르드족의 아이덴티티는 쿠르만지어를 사용하고 샤피이학파의 무슬림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통적인 쿠르드 사회는 부족과 몇 개의 부족들이 합해진 부족연합을 생활 공동체로 삼고 있다. 공동의 목초지를 가지고 있는 부족은 외부세계와 구분되는 하나의 정치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즉, 각 부족은 혈연관계를 바탕으로 역사적, 경제적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다. 쿠르드 전통에서 지역의 토호인 아가(Agha)는 한 지역의 경제적, 정치적 실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지역의 촌락민들은 아가에게 충성을 다짐했다. 그러나 촌락을 중심으로 형성된 쿠르드 사회 체제는 점차 변화하여 도시 중심 생활로 바뀌고 있으며, 이러한 도시화 현상에 따라 아가를 중심으로 한 사회질서도 새롭게 재편되고 있다.
김동근기자 (2005-05-13 오전 10:3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