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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티아(Parthia, BC247 - AD225)

지평선의순례자 2012. 2. 5. 20:24

출처 : http://blog.naver.com/middleway49/110122776906


파르티아 왕조의 설립자인 아르사케스는 원래 옥수스江 유역에 머물던 스키타이 계열의 유목민 또는 박트리아 출신이라고 한다.

서기전 250년경 셀레우코스 왕국의 파르티아 지방의 총독이었던 안드라고라스를 죽이고 파르티아와 이란 지역을 통치하기 시작했다. 서기전 247년 아르사케스 1세는 셀레우코스 왕국의 안티오고스 2세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독립 왕국을 선포하였다. 서기전 2세기에 파르티아는 전통적인 수시아나와 메디아를 비롯하여 동쪽의 박트리아와 서쪽의 바빌로니아까지 그 세력을 확장하였다. 파르티아 세력은 서기전 141년 셀레우코스 왕조의 시리아-메소포타미아 왕국의 중심지였던 티그리스 강변의 셀레우키아를 점령하면서 그리스 세력을 시리아 지역으로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나아가 미트라다테스 2세는 아르메니아 지역까지 진출하여 영토를 더욱 확장하였다.

전성기 때는 이란의 전 지역을 자신들의 세력으로 뒤덮었을 뿐 아니라, 오늘날의 아르메니아를 비롯한 이라크, 그루지야, 터키 동부, 시리아 동부, 투르크메니스탄, 아프가니스탄, 타지키스탄, 파키스탄,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의 페르시아灣 해안 지역, 바레인, 카타르, 아랍 에미리트 연방까지 세력권에 넣었다.

파르티아 제국의 중심 도시는 중앙아시아의 아르삭에서 시작하여 엑바타나를 거쳐 바그다드 근처의 크테시폰까지 이전되었다. 제국의 수도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점차 이전되었다는 것은 중국에서 출발하여 중앙아시아를 거쳐 로마까지 이르는 비단길을 비롯한 국제 무역로를 중시한 것이고, 東지중해 중심의 헬레니즘 세력에 대항하여 그들의 영토로 진출한 사실을 나타낸다.

 

기원전 129년 크테시폰이 새 도읍으로 조영되어 정치적 중심지가 되었다.
크테시폰은 티그리스강 대안의 셀레우코스 왕국의 셀레우키아에 대한 파르티아 측의 전진기지였으나, 파르티아가 메소포타미아에서 패권을 확립한 후 왕궁이 건설되어 겨울철의 수도가 되었다. 

크테시폰은 티그리스江을 통제하며 로마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군사적 요새로 발전되었다. 따라서 크테시폰은 2세기 초부터 로마 제국의 티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등의 군대가 치열한 전투 끝에 점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2세기에 들어와 로마 세력의 침입을 받아, 화재를 당하면서 페허가 되었다. 당시의 건축을 전하는 돔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파르티아가 점점 발전하면서 동서의 대국인 중국과 로마가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 있었고, 중국과 파르티아 사이의 대상로는 훗날 동서를 잇는 '실크 로드'가 되었다. 중국에서는 안식(安息)이라고 불렀다. 
미트라다테스 2세는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서아시아 지역을 두고 로마와 경쟁하였으나, 양국의 서아시아에 대한 주도권 싸움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이로 인해 파르티아의 국력은 피폐해져서, 226년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공격을 받고 멸망하였다.
파르티아는 기본적으로 봉건국가였으나 행정제도의 대부분은 주로 시리아 왕국 시대의 것을 답습하였고,  미트라다테스 2세는 왕권의 뿌리를 아케메네스 왕조로 선포하고 페르시아 제국 시대의 행정 체계를 모방하였다.
문화면에서는 도시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문화의 영향이 컸다.
미트라교와 아나히타 여신교가 전국을 휩쓸었으나, 왕국의 말기에는 본래의 이란적 마즈다교가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로마, 셀레우코스, 파르티아 제국             기원전 200년경
 
 
 
스키타이, 사르마티아, 박트리아, 파르티아 제국      기원전100 ~ 기원전 50 
  
 
 
 
호스로 왕 궁전  크테시폰                  1864 
 
 
 
왕궁          크테시폰                         2007년
 
 
 
1923년 발행된 우표                  이라크
 
 
 
 
파르티아 왕비
 
 
 
 
아르사케스 1세(서기전 247~  서기전 211) 
 
 
 
 
미트라다테스 2세
 
 
 
 
 
 
 
 
 
벨트 금바클
 
 
 
 
 
 
 
프리기안 모자를 쓰고있는 노예               카메오
 
 
 
 
 
 
 
 
파르티아 의상을 입은 청년          팔미라 (시리아)    루브르 박물관
 
 
 
 
프리기아 모자를 쓴 죄수
 
 
 
창과 방패를 든 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