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잔빌 (Tchogha Zanbil)과 지구라트
초가잔빌 [Tchogha Zanbil]
이란 쿠제스탄주의 고대도시 유적지로 BC 13세기 중반 엘람 왕국의 왕 운타시 갈(Untash Gal : BC 1250경 재위)이 건설한 도시이다. 수사 남쪽에 있으며 당시에는 '두르운타시'라고 불렸다. 수소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신 인슈시나크를 모신 성소로서 엘람 왕족의 묘지가 있는 성도이다. BC 640년 무렵 아시리아의 침입으로 수사와 함께 파괴되었으나 1935년 유전탐사로 인해 세상에 알려졌다. 도시는 2중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외벽 총길이는 약 4km이고 안쪽에는 내벽이 둘러쳐져 있다. 내벽 안쪽은 가로 470m, 세로 380m, 면적 약 18ha로서 성역으로 여겨졌다. 이곳에는 성탑 지구라트, 신전, 안뜰, 무기와 장식품을 보관하는 창고 등이 세워져 있었다. 지구라트 북서쪽 벽으로 둘러싸인 사각 모양의 공간에는 남신 이슈니칼랍·나피리샤와 여신 키리리샤를 모신 3개의 신전이 있다. 각 신전에는 안뜰 지성소·공물보관소 등이 설치되어 있다. 건물 기단은 불에 구워 만든 벽돌, 건물 위쪽은 햇볕에 말린 어도비 벽돌로 지었으며 벽에는 엘람어로 된 비문이 새겨져 있다.
유적 중앙에 있는 지구라트는 서아시아 최고의 규모로서 현재 높이 28m이다. 초가잔빌은 원래 5층이였으나 현재 3층까지만 남아있으며 원래 높이는 60미터로 추정되나 현재는 25미터이다. 밑면은 한 변의 길이가 102미터인 정사각형 모양이다. 4모퉁이가 동서남북을 정확하게 가리킨다. 1935년 앵글로 이란 석유회사가 지역조사를 하던 중 우연히 발견되었다. 고대 이란에 거주했던 사람들은 산을 신성시 했었다. 하지만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산이 없어서 산의 형상을 만든 것이 이 초가잔빌의 지구랏트로 알려져 있다. 1979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지구라트
BC 3000년대 전반 이전의 기단이 있는 신전에서 그 원형을 볼 수 있으며, 우르(Ur) 제3왕조의 수립자인 우르남무(Ur―Nammu)의 지구라트에서 기본적인 형을 거의 갖춘 것으로 보인다. 우르남무는 우르·우르크·니푸르(Nippur)·에리두에 지구라트를 세웠는데 이 중 유명한 우르의 지구라트는 3층의 기단 윗부분에 主神 난다에게 봉헌한 신전을 배치하고 정면과 양 측면에는 계단을 배치한 구조이다. 이러한 형태의 지구라트는 카시트시대(BC 2000년대 후반) 두르쿠리갈주에서도 볼 수 있는데, 여기에는 기단 위의 신전과 같은 신을 모시는 신전이 산기슭에 세워져 있다. 이것은 신이 있는 곳(높은 곳의 신전)과 인간이 예배를 드리기 위한 장소(낮은 곳의 신전)라는 종교개념의 확립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 뒤의 지구라트 양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시리아 시대(BC 1365∼BC 609), 북메소포타미아의 각 도시에 조영(造營)된 지구라트에는 계단 대신에 경사로가 설치되었다. 6개의 신전에 부속되어 있는 코르사바드의 지구라트는 4층만 남아 있는데 그 당시는 7층으로 채색되어 있었다고 한다.
<바벨탑>으로 유명한 바빌론의 지구라트는 신바빌로니아시대(BC 625∼BC 538)에 속한다. 주신 마르두크의 신전에 이르려면 계단과 경사로를 지나가야 하는데, 여기에도 채색이 되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밖에 엘람에서도 초가잔빌에 BC 13세기에 5층의 기단이 있는 인슈시나크神의 지구라트가 건조되었다. 이와 같은 지구라트를 축조할 때에는 속에는 햇볕에 말린 벽돌을, 겉마무리 쌓기에는 구운 벽돌을 쓰고, 역청 등을 모르타르로 사용하였다. 또한 표면의 채색은 채유(彩釉) 벽돌로 하였다.
우르의 지구라트는 3층의 기단 윗부분에 主神 난다에게 봉헌한 신전을 배치하고 정면과 양 측면에는 계단을 배치한 구조이다. 이러한 형태의 지구라트는 카시트시대(BC 2000년대 후반) 두르쿠리갈주에서도 볼 수 있다.
BC 2100년경 건설된 우르의 지구라트는 지금까지 발견된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 중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전된 것이다. 당시 우르 제III 왕조의 왕 우르-남무는 이 도시의 수호신 난나(Nanna)를 모신 신전을 좀 더 높은 곳에 세워 도시의 중심적인 상징으로 만들고자 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바벨탑의 원형이기도 한 지구라트는 원래 꼭대기의 신전을 받치기 위한 받침대에 불과하다. 따라서 비록 지구라트가 이집트의 피라미드로부터 그 건축적인 아이디어를 빌려왔지만 이곳에서는 무덤이 아닌 신전 받침대로 활용됐다. 재질이 약한 흙벽돌을 주로 건축자재로 사용했기 때문에 강도를 높이기 위해 역청을 사이사이에 깔았고 어떤 경우에는 갈대로 엮은 매트리스를 일정 간격으로 흙벽돌 사이에 끼워넣기도 했다.
이라크에 있는 많은 지구라트 중 하나의 모습이다. 바빌로니아 전승에 의하면 이 탑은 원래 니므롯이 축조했다고 한다. 아랍인들은 오늘날까지도 이 탑이 있는 지역을 Birs Nimrud, 즉 '니므롯의 땅'이라고 부른다. 이 탑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바벨탑과 동일한 유형의 것이지만 그 보다는 훨씬 작다. 바빌로니아의 신전을 지구라트라고 한다. 그 신전 중 제일 큰 것으로 보이는 탑이 근래에 와서 발견되었다. 바빌로니아 시대의 기록에 의하면 바빌로니아의 최고 왕이 느부갓네살이고, 예루살렘을 함락한 것이 BC 586년인데 그 당시에도 이미 지구라트는 오래 된 탑이었다. 역사가 헤로도투스의 기록에 의하면 이 건축물은 서로 맞물리는 여덟 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주위에는 꼭대기에 오르기 위한 나선형의 길이 나 있으며, 그 꼭대기에는 거대한 신전, 바빌로니아의 신의 집을 지어 놓았다고 기록했다. 이 거대한 건축물은 210m 이상의 높이를 가졌고 한 층을 약 3m로 잡으면 70층이 된다. 수천년 전에 만들어진 이 벽돌 한 장 한 장에는 놀랍게도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자기들이 섬기던 신의 이름인 '마르둑(Marduk)'이라고 쓰여 있다.
6층에 바알신의 지성소가 있었다.
바빌론의 지구라트는 신바빌로니아시대(BC 625∼BC 538)에 속한다. 주신 마르두크의 신전에 이르려면 계단과 경사로를 지나가야 하는데, 여기에도 채색이 되어 있었다고 하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 바빌론에는 위대한 신들을 위한 신전 53개, 마르둑신을 위한 예배당 55개, 대지의 신들을 위한 예배당 3백개, 하늘의 신들을 위한 예배당이 6백개가 있었으며, 여러 신들을 위한 제단이 4백개가 있었다. 이 중에는 ‘신의 문’이라는 뜻의 바벨탑이 있었는데, 이 탑은 7층으로 높이가 90m이며 8천5백만개의 벽돌을 사용했다. 나보포라싸왕은 ‘마르둑신이 나에게 에테메난키(바벨탑)의 기초를 지구 중심까지 닿도록 단단하게 만들라고 명령했다. 그래야만 하늘까지 오를 수 있는 건물을 만들 수 있다’고 적었다.
Tower of Babel (바벨탑)
바벨탑의 기원은 바빌로니아 도시국가의 특징으로 되어 있는 지구라트(Ziggurat)이다. 이것은 피라미트 형(形)의 높은 탑으로서 보통 7층루(七層樓)로 되어 있으며, 신원(神苑)의 중앙에 세워졌는데, 정상에 만들어진 신전에서 제의가 행해졌다. 7층루는 일곱 가지 색으로 칠해지고, 5개의 유성과 태양, 태음, 또는 그것에 상당하는 신신의 상징으로 다음과 같은 관계였다.
제1층 토성(土星) |
니니브(Ninib) |
흑색(黑色) |
제2층 목성(木星) |
마르두크(Marduk) |
등황색(橙黃色) |
제3층 화성(火星) |
네르갈(Nergal) |
심홍색(深紅色) |
제4층 태양(太陽) |
샤마슈(Samas) |
황금색(黃金色) |
제5층 금성(金星) |
이슈타르神(Istar) |
담황색(淡黃色) |
제6층 수성(水星) |
느보神(Nebo) |
남색(藍色) |
제7층 태음(太陰) |
신神(Sin) |
백은색(白銀色) |
바벨론 발굴의 결과, 바벨탑은 마르두크의 신전 에사길라(Esagila=머리를 높이 든 자의 집)의 북방 에테메난키(Etemenanki=하늘과 땅의 기초의 집)라고 불리는 지구라트로 동정된다. 이것은 슈메르인에 의해서 기공된 것인데, 셈족의 침입으로 준공하지 못했다. 이 거대한 미완성 탑은 오랫동안 고대세계의 불가사의 중 하나였다. 산헤립(Sennacherib BC 704-681)이 바벨론을 점령했을 때 이 유물을 제거하려 했으나 성공치 못했다. 에살핫돈(Esarhaddon BC 680-669), 앗슈르바니팔(Asshurbanipal BC 668-631)등도 재축(再築)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로 끝났다. 이어서 나보폴랏살(Nabopolassar BC 626-605)도 공사를 계속했으나 성공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그 완성은 겨우 느브갓네살 2세(Nebuchadnezzar Ⅱ BC 605-562)에 의해 이룩되었다.
그의 비분에는 이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다. 탑의 지계(地階)는 91.4㎡이고, 높이 36.5, 제2층의 주변은 지계(地階)보다 좁고, 높이는 20m, 제3층에서 6층까지는 각 층 모두 높이 6.4m, 그 주변은 층을 거듭함에 따라 좁아지고, 제7층 즉 최상탑은 높이 17m, 그 가운데 신전이 세워져 있으며 탑 전체의 높이는 98.5m에 미치고 있었다. 바벨론 멸망 후 이 폐허는 주변 주민의 흙벽돌 절취장(切取場)으로 되어버렸다. 옛 탑의 기초였던 부근은 현재 불과 91.5㎡의 구덩이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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