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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하이 전투

지평선의순례자 2007. 1. 18.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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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하이 전투(Carhae , 기원전 53년)는 삼두 정치의 일원이던 크라수스폼페이우스율리우스 카이사르와 비슷한 전공을 세우고자 하는 욕심으로 약 3만의 보병과 카이사르에게 제공받은 4천의 기병을 이끌고 파르티아 침공에 나섰다가, 파르티아군에게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한 전투다.

파르티아는 중기병과 궁기병으로 편성되어 있었는데, 수레나스는 말에까지 갑옷을 입히고 창을 휘둘러 접전을 벌이는 중기병대와 복합궁을 사용하며 전방위로 사격을 할 수 있는 궁기병대 중 궁기병대를 지휘하여 방어전에 나서게 된다.

파르티아군은 약 1만의 궁기병대로 로마군의 대열을 포위하고 지속적인 사격을 퍼부었고, 후위의 낙타 보급부대는 궁기병대의 화살 공격이 끊어지지 않도록 여분의 활과 화살을 보급했다. 언덕 아래에 대열을 짠 로마 보병대는 하루종일 계속된 사격을 버텨내었으나, 철수 중 적의 기만에 속아 부대 전체가 고립되고 만다. 크라수스와 고위 장교들은 거짓 항복협상에 속아 모두 살해되고, 뿔뿔이 흩어진 로마군은 결국 대부분 포로로 잡히고 약 1만명 정도만 귀환하게 된다. 이 패배는 로마의 다른 패배와 달리 복수하지 못하고 만다